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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의 종 풍습 언제부터?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일본식 축제

by carrothouse33 2024. 12. 30.

목차

    제야의 종 풍습 언제부터? -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일본식 축제

    내일이면 올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입니다. 해마다 12월 31일 밤 12시가 되면 광화문 보신각에서는 제야의 종 33번을 치고 새해를 맞습니다. 이러한 제야의 종 타종 행사는 한국인들에게 새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의식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기원이 과연 우리의 전통에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야의 종을 치는 것이 조선 시대부터 전해져 오는 오랜 풍습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아니 조선시대 이전에도 제야의 종이라 해서 해가 바뀔 때 종을 치는 풍속은 없었습니다. 음력설을 쇠던 우리 민족은 고향 찾아가기도 바쁜데, 그 추운 종로에서 종 칠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한양 4대 문 안 쪽에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해 매일 통행금지 시작시간과 끝나는 시간에 종을 쳤을 뿐입니다.

    일제강점기와 제야의 종 풍습의 시작

    제야의 종 풍습은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일본의 관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섣달 그믐날, 즉 한 해의 마지막 날 밤에 신사나 절에서 종을 108번 치며 번뇌를 떨쳐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의식을 오랫동안 행해왔습니다. 이 숫자 108은 인간의 번뇌의 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종을 칠 때마다 번뇌를 하나씩 떨쳐낸다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이 같은 풍습은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유입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보신각 종이 아닌 서울 남산에 있던 일본 절의 종이 타종의 중심이었습니다. 

    라디오 방송과 제야의 종 중계의 도입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방송은 1927년 경성방송국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방송국은 라디오 청취자 수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으며, 새해를 맞아 특별한 이벤트로 제야의 종 소리를종소리를 생방송으로 중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28년 첫 시도로 꾀꼬리 소리를 방송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다음 해에는 남산의 일본 절에서 종을 직접 가져와 타종 소리를 생방송으로 송출하게 되었습니다.

    이 방송은 청취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으며 매년 새해 첫날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로서는 라디오를 통해 종소리를 듣는 것이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으며, 밖에 나가지 않고도 새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시절 라디오 방송의 도입과 함께 제야의 종 풍습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보신각 종과 해방 이후의 변화

    해방 이후 제야의 종 타종은 중요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보신각 종은 본래 조선 시대에 매일 밤 10시와 새벽 4시에 각각 28번과 33번 울리며 성문 개폐를 알리던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이를 인경(28번)과 파루(33번)라고 불렀으며, 시계가 흔치 않았던 조선 시대에 일반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갑오개혁 이후 보신각 종은 그 역할을 잃고 긴 세월 동안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1946년 3월 1일, 해방의 기쁨을 기념하기 위해 보신각 종이 다시 울렸으나 이는 단발성 행사로 끝났습니다. 제야의 종으로서 보신각 종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953년으로,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고 난 뒤 새해를 맞이하며 평화와 희망을 기원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보신각 종을 33번 울리는 방식은 조선 시대의 전통을 재해석한 것으로, 일본의 108번 타종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우리만의 풍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왜 33번인가? 불교식 종을 치는 것이니 불교 세계관에서 하늘은 33겹이고, 별자리는 28개 별자리를 특별히 여겼습니다.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도는 날이 대략 28일이기 때문에 하늘을 28 등분해서 각 별자리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인경에는 28번의 종을 치며 편안히 쉬자는 뜻이고, 파루에 33번 치는 것은 제석천이 다스리는 33개의 하늘에 날이 밝았음을 알리며 '일어나 일합시다'라는 의미로 33번의 종을 친 것입니다.

    보신각 종을 33번 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새해가 밝았으니 제석천이 다스리는 33개의 하늘에 새해가 밝았음을 고하는 행사지요. 지극히 불교적인 행사입니다.

    제야의 종 타종 의식의 현대적 의미

    오늘날 제야의 종 타종 행사는 단순히 새해를 알리는 의식이 아니라,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희망을 다짐하는 상징적 행사가 되었습니다. 서울 보신각에서 이루어지는 타종은 매년 많은 시민들과 언론이 참여하는 대규모 이벤트로 발전했으며,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됩니다. 이러한 현대적 의미는 제야의 종 풍습이 과거 일제강점기의 잔재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정체성을 가진 의식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풍습의 기원이 일본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풍습을 단순히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더욱 한국적인 문화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역사를 직시하고,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결론

    제야의 종 풍습은 현재 한국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대표적인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그 기원이 일제강점기의 일본식 관습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일제 잔재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풍습을 한국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의미를 더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풍습의 뿌리를 이해하고 역사적 배경을 인식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더욱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참고로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 새해 행사로는 연종포라는 대포를 마구 쏴대는 풍속이 있었다고 합니다. 귀신 잡귀를 대포로 쫒는다는 포방부를 가진 화력 덕후의 나라 대한민국이라면 역시 곡사포 정도는 쏴 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